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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색소폰 재즈바에서 정전 경험한 후기

태국/여행기록

by TEXTIMAGE 2020. 1. 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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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가면 재즈바나 펍을 꼭 한 번은 간다. 여러 장소가 있지만 색소폰 펍이 접근하기 편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가는데, 한 번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공연 도중 정전이 된 것인데, 혼자 갔으면 모를까 하필이면 한국에서 짧은 휴가를 내고 온 친구들을 데리고 간 상황에서 정전이 일어났다.

저녁 아홉 시 반을 넘긴 시간에 펍에 입장했다. 10시 공연부터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춰 온 건데, 타이밍을 잘 못 맞춰 들어온 건지 좋은 자리의 테이블은 임자가 다 있었다. 나중에 옮기기로 하고 일단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먹을 것과 맥주를 시켰다. 저녁을 안 먹고 군것질만 하다가 왔기 때문에 음식은 여러 개를 주문했다. 공연 시각이 가까워지자 밴드가 공연을 준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맥주를 새로 주문해서 노래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공연이 시작되자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로 연주와 노래소리가 펍 안에 가득 찼다. 공연이 시작하고 한 4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모든 불이 다 꺼지고 연주 소리도 뚝 멈추었다. 불이 꺼지자마자 사람들이 내뱉는 '어오~' 하는 탄식이 음악을 대신해서 펍 안에 울렸다. 비상등인지 바로 조명 몇 개가 켜졌다. 곧 복구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런 일도 다 겪는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한 20분 정도 지났나? 원래 조명이 들어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길래 나와 친구들도 박수를 따라쳤다. 그런데 박수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두 번째 정전. 다시 한번 가게에 어둠이 찾아왔다. 에어컨이 작동을 안 하니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맥주도 다 마셨고 화장실이나 다녀온다고 1층으로 내려갔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어두 컴컴한 와중에 촛불 몇 개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조선 시대인가? 촛불로는 빛이 부족해서 핸드폰 불을 켜고 일을 봐야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기다릴 만큼 기다린 듯한 타이밍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계산을 요청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우리도 계산해달라고 했는데, 종업원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불러도 손사래를 치며 지나간다. 뭐지 이 상황은. 곧 복구될 테니 기다리라는 소리인가?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고는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포스기도 전원이 나갔기 때문에 주문내역을 알지 못해 계산을 못 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못 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서빙을 보는 직원들은 둘러앉아서 테이블마다 주문한 메뉴를 수기로 적느라 바빴다. 맥주만 한 병 주문한 사람들은 계산을 하고 나가고 있었고, 우리같이 엄청나게 주문한 테이블은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었다. 

일단은 기다렸다. 그런데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얘기가 없다. 2층의 손님들은 절반 정도가 계산을 하고 나갔다.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 메뉴를 기억하지 못하면 전기가 돌아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할 듯싶어 직접 종업원을 찾아갔다. 먹기 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메뉴판을 보며 종업원과 함께 리스트를 만들었다. 웃긴 상황이었다. 점점 더워지는 공간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기에 빨리 나가고 싶었다.

드디어 계산을 마치고 밖에 나왔다. 진작에 내가 먹은 사진들을 보여줬으면 다른 곳에 갈 여유가 됐을 텐데, 이미 자정이 넘어서 어디 가기가 애매했다. 거기다가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붓고 있어서 숙소로 복귀하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 비 오는 날 택시도 잘 안 다니는 지역이라 그런지 택시기사가 꽤 높은 가격을 부른다. 조금 깎아보려고 시도했으나 씨알도 안 먹힌다. 오늘 같은 날은 다른 택시도 비슷할 것 같아 오케이 하고 택시를 탔다.

숙소인 르부아에 도착해 피곤해하는 친구는 먼저 올려보내고 다른 친구와 함께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과자를 샀다. 자정이 넘어서 술은 살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도시락과 미리 사다 두었던 맥주를 마셨다.

친구들이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마지막에 좋지 못한 경험을 시켜준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됐다. 이후에도 색소폰에 몇 번 더 갔었는데, 정전이 된 적은 이번 한 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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