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대하던 치앙마이 ~ 방콕 구간 야간 슬리핑 기차를 탔다. 두 지역을 오갈 때 주로 버스를 타고 다녔고, 가끔은 비행기를 탔다. 기차를 타고는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번에 타게 됐다.
내가 탄 기차는 오후 6시 출발 Special Express고, 좌석은 Class 2(2등석) 아래 침대칸이었다. 이 기차는 여자 전용 칸이 따로 있기도 하다.
이 글이 원래 목적과 다르게 방콕에서 후아힌으로 가는 검색어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에 있다.
[태국/여행정보] - 방콕에서 기차타고 후아힌 가기 | 가는 방법, 예매, 제공식사
오후 6시 출발 기차였는데 기차는 5시 반에 이미 들어와 있어서 미리 탈 수 있었다. 기차가 한 대밖에 없어서 잘못 탈 일은 없었지만, 만약을 위해 기차에 적혀있는 정보와 티켓의 정보를 확인하고 탑승했다. 사진에는 태국어로 적혀있지만, 기차 정보가 영어와 태국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난다.
나름 최근에 투입된 차량이라 그런지 타자마자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후아힌을 갈 때 탔던 기차와 비교하면 엄청 깨끗했다.
[태국/교통수단] - 기차 타고 방콕에서 후아힌 가기 | 예매 방법, 탑승, 시간, 기내식(?)
좌석은 앞뒤로 마주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은 침대가 펼쳐지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전까지는 불편한 동거 또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서로 모른 척. 내 파트너(?)는 내가 자는 사이에 기차에 탑승했다. 야밤에 깨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2층에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침대칸이 될 좌석이라 좌우가 상당히 넓다. 캐리어에 백팩까지 있어 짐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좌석 밑 공간이 상당히 넓어 가방 두 개 다 넣을 수 있었다. 24인치 캐리어까지는 무난하게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차 시설에 대한 설명은 따로 작성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
[태국/교통수단] - 치앙마이 ~ 방콕 운행 기차 시설 보기 Special Express Class 2 18:00 출발편
6시에서 몇 분 더 지나서 기차가 출발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은 기차 출발하자마자 직원을 불러 침대칸을 만들었다.
기차가 움직이니 진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의 설렘이란...
출발하고 얼마 안 돼서 티켓 검사를 했다. 제복을 입은 모습이 군인 같아서 살짝 무서웠는데, 분위기와는 다르게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기차 뒤쪽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침대칸을 만들고 있었다. 어서 내 차례가 오기를 바라며 다시 설렘이 뿜뿜했다.
직원은 굉장히 숙련되어 있어서 의자를 빠르게 침대로 만들었지만, 좌석이 많아서 그런지 맨 앞쪽에서 두 번째였던 내 자리까지 오는 데는 한 시간이나 걸렸다.
드디어 내 좌석이 침대가 되는 순간이 왔다. 한 손에는 고프로, 다른 한 손에는 폰을 들고 동영상과 사진 촬영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영상이 없었다. 외장하드에 영상을 복사한 줄 알고 영상이 담긴 SD카드를 지우고 계속 썼던 모양이다. 치앙마이에서 아오낭 도착까지의 영상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침대의 길이는 나한테는 여유가 있었다. 키가 큰 사람이라면 짧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침대가 만들어지자마자 사람들이 다 안으로 들어가서 커튼을 쳤다. 복도는 밤새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커튼을 안 치면 자기 힘들고, 누워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 나도 바로 커튼을 쳤다.
오늘은 한 것도 없었는데 피곤했는지 11시도 안 돼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에 화장실을 간 것 말고는 중간에 깨지 않고 잤다. 수면시간만 보면 꽤 오래 잔 건데, 눈을 떴을 때 개운하지는 않았다. 기차의 진동 때문인지 푹 잔 느낌은 아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니 2층에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잠들었는데 직원의 목소리에 한 시간 만에 다시 잠에서 깼다. 직원이 '랑싯. 랑싯' 외치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깨웠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지도를 보니 랑싯은 돈므앙 공항 위쪽의 도시였는데 방콕 바로 위였다. 조금 지나서 방송으로 방콕에 들어왔다고 알려줬다.
어제 침대를 만들어줬던 직원이 다시 침대를 좌석으로 바꿨다. 어제 말끔했던 직원은 잠을 험하게 잤는지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에 기름기 가득한 얼굴, 굉장히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기 일을 해나갔다. 요령 있게 이물을 뭉치로 만다는 기술이 대단했다.
오전 7시 40분에 방콕 후알람퐁 역에 도착했다. 예정 시각보다 50분 늦었는데, 사실 난 더 늦을 줄 알았다. 한 시간밖에 안 늦어서 안타까웠다. 수완나품 공항에 가서 1시 35분에 출발하는 끄라비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기차가 너무 늦게 도착해도 문제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불필요한 여유시간이 생겨버렸다.
플랫폼에 들어서서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창밖으로 청소부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다시 출발하는 기차도 아닐 텐데 청소 특공대 같은 분위기였다.
13시간을 타고 온 기차에서 내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해 찝찝하고 피곤한 상태로 백팩과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역 밖으로 걸어 나왔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바로 갈지, 시내에 들렀다 갈지 잠깐 고민했다. 공항 가서 불편하게 있는 것도 별로고 짐을 들고 시내를 방황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서 막까산역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간이 되면 바로 ARL을 타고 공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 MRT 후알람퐁역으로 이동해 지하철을 탔다. MRT나 BTS에 큰 가방을 가지고 타면 가방 안을 보자는 경우가 있는데, 기차역이라 그런지 열어보라는 요청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장거리 야간 기차여행이 끝났다. 버스와 비교하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피곤함이 더 커서 다시는 안 탈 것 같다. 다시 방콕~치앙마이 간 이동할 일이 있으면 버스를 주로 탈 듯싶고, 여행 일정이 짧을 때 비행기를 한 번씩 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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